이진삼 그의 일생은 공산주의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한 삶의 연속이었다. 국가를 위하여 싸우자고 함께 다짐했던, 전우들을 먼저 간 전우들에 대한 죄책감으로 현충원을 찾을 때마다 용서를 빈다. 차라리 그가 적의 흉탄에 쓰러졌다면 영광스러운 마지막이 되었을 것이라고 표현한 심정을 이해할 수 있다.정의롭게 살고자 노력했던 그의 군 생활은 파란만장 그대로였다. 부하들에게 강력한 교육훈련과 전투진지 요새화 등 많은 것을 강조하고 요구한 것은 지휘관 본연의 자세다.변화무쌍 세상 속에서 그의 애국심은 만고불변할 듯하다. 본인은 “머리 안 좋다”,
회장님, 고맙지만1991년 10월 오전 9시 태릉에서 골프 약속이 있었으나 오전 강수량이 20mm를 넘었고 오후에는 폭우 경보 발령까지 내려서 아침 7시경 취소하였다. 때마침 현대건설 사장이었던 이내흔 친구가 바람 쐬러 가자고 하여 어디론가 같이 갔는데 종로구 청운동의 현대그룹 왕회장 댁이었다. 정 회장은 백색 마스크를 벗으면서 “젊을 때 새벽 찬 공기를 마시며 일을 하다 보니 감기 면역성이 떨어져 조심하고 있다.”면서 독감이나 유행성 감기가 아니기 때문에 전염 걱정은 없다고 우리를 안심시켰다.1개월 전 한강 수해 당시 행주대교 건